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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도 안 날만큼 오래 전, 진영의 옥탑방에서 주말 오후를 뒹굴며 보내다가 "내 이름은 김삼순"이라는 책을 발견했다. 표지 디자인이 뻔한 로맨스소설같긴 했지만 진영이 강력추천하길래 읽었는데 정말 재미있었다. 물론 로맨스 소설의 기본바탕에서 많이 벗어나지는 않았지만 먼 나라에 사는 브리짓보다는 훨씬 현실적으로 느껴졌다. 그 후 한동안 잊고 있었는데 김선아를 주인공으로 드라마도 나왔다 하더라. 이미 한국에 있지 않아 볼 수는 없었지만 많이 궁금했다.

김삼순 이후에도 개인홈페이지나 블로그들 보면서 흥미가 생긴 몇 개의 드라마들이 있었다. "달콤한 나의 도시"도 그 중 하나였는데, 드라마를 직접 본 게 아니라 대충 정보만 접하다보니 김삼순처럼 잘 써진 로맨스 소설을 바탕으로 한 것이겠거니 착각하고 있었다. 얼마 전 Yes24를 둘러보다가 "달콤한 나의 도시"가 갑자기 생각났다. 책으로 한 번 읽어볼까 하고 검색하다보니 응...? 정이현은 로맨스 소설 작가가 아니었구나. 수필집도 있길래 마음에 드는 작가이기를 기원하며 소설과 함께 카트에 담았다.

왜 한국의 유명한 여자 작가들은 그리도 한에 서려 있거나 매사에 투쟁하거나 감수성이 철철 넘쳐흐르는 걸까. 물론 한국 사회에서 여자로 살아간다는 것 자체가 녹록한 일은 아니지만. 같은 시선에서 이야기 할 수 있는, 담백하면서도 감칠난 글을 쓰는 작가는 정녕 한명도 없는지 궁금했다. 드라마틱한 이야기 말고 잔잔히 공감할 수 있는 글이 읽고 싶어지면 일본 소설에 손을 뻗어야 하는게 씁쓸했다. 장르가 다르긴 하지만 스노우캣이나 낢이야기, 루나파크, 나이스 진 타임처럼 내 얘기 하는 것 같은 일러스트 에세이 작가는 많잖아.

겨우 두 권의 수필만 읽고서 감히 판단하자면 정이현은 여태까지 바라 마지 않던 작가인 것 같다. 같은 이유로 싫어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아무튼. 교감할 수 있는 동시대의 한국 여자 작가의 발견이 너무 기쁘다.

풍선은 영화를 보고, 작별은 책을 읽고 떠오르는 단상들을 적어간 에세이인데, 내가 읽지 않은 책과 보지 않은 영화가 반 이상이었음에도 읽어나가는데 아무런 문제가 없었고 그 책과 영화들에 흥미가 생겼다. 역시 정혜윤의 책과 비교된다 -.-;; 침대와 책은 아직 절반도 안 읽었는데 슬슬 짜증이 나고 있다. 욕을 할래도 일단 다 읽긴 해야 할 것 같아서 머리맡에 굴려두고 있는데 언제 다 읽을런지.

언어가 없으면 관념도 없다는 것이 옳지 않은 명제는 아니지만, 문학에서의 언어는 관념의 틈새를 저만치 비켜나 있는 것은 아닐까. 어떤 거창한 이데올로기도, 지엄한 도덕과 윤리도 문학의 자리는 아니지 않을까. 문학이 꿈꾸는 것은, 관념 이전에 소통이 아닐까. 나와 당신의 소통, 나와 세계의 소통, 나와 나의 소통. 물론 그 소통들은 지구에 존재하는 문학가의 숫자만큼이나 각양각색의 무늬를 하고 있을 것이다. 아무것도 주장하지 않고, 아무것도 줄 세우지 않고. 국민총경제생산량에 별 도움도 되지 못하는, 물음표와 물음표 아닌 것을 치열하게 고민하면서.

어떤 한 작가에 대한 호오의 문제도 어쩌면 마찬가지일 것이다. 일본의 젊은 작가 요시다 슈이치의 소설들은 확실히, `필feel`이 통하는 독자에게 그 의미가 몇 배로 증폭되어 와닿는다. 에스프레소를 숭배하는 친구는 "무슨 소설이 이렇게 후딱후딱 읽혀? 또 결국 아무 해결책도 없잖아. 심심하고 사소한 내 인생을 굳이 소설 속에서 재확인하고 싶진 않다고!"라며 투덜거렸다. 그러나 나는 "바로 그것과 똑같은 이유로, 내가 요시다 슈이치를 좋아하는 거야!"라고 까칠하게 응수하지 않았다. 세계 평화를 위해 그 정도는 해야 한다는 것을, 이제는 안다.

전 세계 인구는 육십억이다. 그 육십억명의 인생목표는 각자 다 다르겠지만, 결국 우리 모두는 각각의 방식 안에서 행복해지기 위해 산다. 행복이 마음의 문제라면, 그것은 곧 자기 앞에 놓인 생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의 문제일 터다. 여자이기 때문에 행복하다, 또는 여자이기 때문에 불행하다는 고백을 이제는 정말로 그만두고 싶어진다. `때문`은 비겁한 의존명사다.
나는 행복한 여자가 아니라, 행복한 사람으로 늙어가고 싶다.